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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창비

booksworld 2025. 5. 2. 14:05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2019년 출간된 이후 대한민국 문단과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단편소설집이다. 특히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창비 웹사이트에 공개된 직후 SNS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그야말로 ‘서버를 다운’시킨 화제작이 되었다. 이 책은 회사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단순히 직장인의 애환을 넘어서 이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 경쟁, 관계의 이면까지 냉정하게 들여다본다.

장류진 작가는 IT업계에서 10여 년 간 실제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너무나도 현실적인 인물들과 상황을 창조해낸다. 그가 그려내는 세상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세계다. 휴게실의 커피머신, 업무 시간 중 몰래 확인하는 스마트폰, 끝나지 않는 업무, 누군가의 사직서, 조용한 생일 축하 메일…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문학적으로 승화되기 어려운 이 일상들을 장류진은 문학이라는 필터를 통해 전면에 내세운다.

1. 작가 장류진의 등장: 늦깎이 신예의 폭발력

장류진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문단에 데뷔했다.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 출발선에 위치한 첫 번째 단편집이다. 그러나 ‘늦깎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그녀의 문장은 이미 노련하고 강렬하다. 짧은 호흡의 대사와 세밀한 상황 묘사, 감정을 내세우지 않고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은 많은 독자에게 신선함과 동시에 어떤 익숙한 위안을 안겨준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단 한 번의 데뷔로 문단의 중심에 섰고, 이후 『연수』, 『달까지 가자』 등으로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런 작가의 시작점으로서, 시대와 세대의 감수성을 예리하게 건드리는 출발 신호탄이었다.

2. 소설집 구성 — 8개의 이야기, 8개의 고독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각 이야기의 인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모든 인물이 ‘일’을 중심으로 살아간다는 공통된 축을 갖고 있다. 단순히 직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포착한다. 이 작품들이 매혹적인 이유는, 우리가 스쳐 지나갔던 감정이나 무심코 넘겼던 사람들의 입장을 정확히 짚어내는 감수성 때문이다.

「잘 살겠습니다」

결혼을 앞둔 주인공이 직장 동료에게 청첩장을 전달하면서 겪는 심리적 혼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관계, 축의금이라는 현실적 계산까지 얽혀 있는 씁쓸한 진심의 풍경.

「일의 기쁨과 슬픔」

표제작이자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작품.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중고 어플 '당근마켓'을 통해 만난 거북이알과의 에피소드는, 직장생활의 공허함과 디지털 시대의 감정 결핍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가장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장 큰 여운을 남기는 방식.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출장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관계란 무엇인가, 진심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질문한다. 감정은 존재했으나 실체가 없었던 관계. 잔상만이 남는다.

「다소 낮음」

인디 밴드에서 활동하다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의 이야기. 창작자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작가 자신의 경험이 묻어나온다. ‘낮은 사운드’처럼 존재를 최소화한 인물의 목소리가 오히려 크게 다가온다.

「도움의 손길」

회사 내 도움과 배려의 개념이 과연 진심일 수 있는가를 묻는다. 연대와 이기심이 복잡하게 뒤섞인 상황 속에서 독자는 스스로의 인간관계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청년 취업난, 무한 경쟁, 그리고 간신히 얻은 첫 직장.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은 누구보다도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서 삶에 대한 간절함과 묵묵한 생존의 태도가 드러난다.

「새벽의 방문자들」

온라인 플랫폼에서 음란 광고를 필터링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이 마주하는 불안과 무력감. 실존적 공포와 디지털 노동의 실체를 동시에 드러낸다.

「탐페레 공항」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젊은이가 공항에서 만난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 삶이란 결국 어떻게 ‘소통’하느냐의 문제임을 이야기한다. 언어와 문화를 초월한 만남이 주는 따뜻한 위안.

3. 현대 사회와 소설의 접점: 공감, 하지만 아프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루지만, 누구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다룬다. 작가는 복잡한 플롯이나 극적인 사건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한 일상 속에서 ‘이야기’를 건져 올린다. 회사에서 오가는 메일, 스마트폰의 진동, 사무실 복도의 정적, 점심시간의 대화 속에서 문학이 태어난다.

이 작품집의 가장 큰 미덕은 ‘정확함’이다. 현실을 정확히 그려낸다는 점에서, 특히 2030 직장인 독자들에게 이 책은 ‘내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어떤 인물의 대사 하나하나가 독자의 하루를 떠올리게 하고, 문단 끝마다 가슴에 비수처럼 박히는 문장이 존재한다.

4. 문장과 스타일 —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서술

장류진의 문체는 매우 절제되어 있다. 감정 과잉도, 장황한 설명도 없다. 대신 한 문장 한 문장에 고민의 흔적이 묻어 있으며, 대사와 상황 묘사를 통해 인물의 성격과 정서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 같은 문체는 도리어 독자들로 하여금 감정을 투사하게 만든다. 읽는 이가 스스로 감정을 채워 넣도록 여지를 두는 이 문체는, 많은 작가들이 시도하지만 성공하기 힘든 방식이다.

5. 『달까지 가자』와의 비교 — 장류진 문학의 진화

『일의 기쁨과 슬픔』 이후 출간된 장류진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는 이 단편집에서 이어지는 문제의식을 더 크게 확장한 작품이다. 『달까지 가자』가 ‘돈’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조망하는 소설이라면, 『일의 기쁨과 슬픔』은 ‘일’을 매개로 인간 존재의 쓸쓸함을 조명한다.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면 장류진이 가진 감수성과 사회에 대한 시선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6. 마치며 — '우리 모두는 어떤 이야기 속에 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단순한 직장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방식을 되묻는 문학’이다. 경쟁에 지쳐 무감각해진 이들,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도 말없이 웃는 이들, 이름 없이 회사를 나가는 동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들 모두에게 이 책은 조용히 말을 건넨다. 우리는 일과 함께 늙어가고, 슬픔과 기쁨이 섞인 복잡한 감정 속에서 하루를 산다.

장류진은 그 말할 수 없던 감정에 언어를 부여했고, 독자들은 그 언어를 통해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도 분명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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